원·달러 환율은 지난 1월 초 1200원을 넘어선 뒤 1300원에 도달한 6월 23일까지는 168일이 걸렸지만, 이후 1400원(9월 22일 1409.7원)까지는 91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불과 2거래일 만에 1430원 선까지 치솟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22일까지 원화 가치는 22.9% 하락해 20001년 닷컴 버블 붕괴 시기(-16.6%)와 2020년 코로나 확산기(-10.1%)보다 낙폭이 컸다.
전문가들은 달러 쏠림 현상이 강해지면서 향후 환율이 10원, 20원 단위로 계단식으로 급등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달러당 1450원 돌파는 시간문제이고 1500원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원화 가치가 추락한 이유는 영국의 파운드화 투매로 ‘킹(king) 달러’ 현상이 두드러지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23일 영국 정부는 50년 사이 최대 규모인 450억파운드(약 70조원)에 달하는 감세(減稅)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영국의 재정 파탄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영국 국채를 투매했다. 파운드화 가치는 26일 한때 1파운드당 1.04달러까지 밀려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존에는 1.05달러(1985년 2월)가 최저치였다.
준(準)기축통화인 파운드화가 무너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 선호 심리가 확산됐다.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인 달러 인덱스가 25일 한때 114선까지 오르며 20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이렇게 달러가 일방적 독주를 하다 보니 원화 값도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전날보다 1엔가량 오른 143엔대에 거래돼 원화와 대조를 이뤘다. 엔화가 준기축통화이고, 지난 22일 일본은행이 엔화 가치를 높이기 위해 24년 만에 대규모 시장 개입을 한 효과 등을 감안하더라도 원화 가치의 하락 폭이 두드러진다.
블룸버그 “‘제2의 아시아 외환 위기’ 우려”
블룸버그통신은 25일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는 사이 아시아 대표 통화인 위안화와 엔화의 가치가 급락하고 있어 ‘제2의 아시아 외환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원화와 필리핀 페소, 태국 바트를 취약한 통화로 꼽았다. 짐 오닐 전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엔화가 달러당 150엔을 돌파하면 서구 자본이 아시아에서 대거 이탈하는 방아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전 세계에 제공한 구제금융이 역대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다. FT는 “올 들어 8월까지 IMF가 각국에 제공한 차관은 44개 프로그램에 모두 1400억달러(약 200조원)에 달했다”며 “합의 후 아직 제공하지 않은 차관까지 포함하면 2680억달러(약 383조원)를 넘는다”고 했다.
IMF가 빌려준 돈이 역대 최대라는 건 신흥국들의 부채 부담이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뜻이다. 미국과 주요 선진국이 금리를 빠르게 올리자 신흥국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와 선진국으로 되돌아가고 있어 일부 신흥국은 이미 외화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 관련, IMF의 대출 여력이 조만간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IMF가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내기가 어려워지면 적지 않은 나라에서 ‘부채 폭탄’이 터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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