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iorGo 김에녹 기자 | 반도체와 핵심 광물 공급망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에 국내 반도체, 자동차, 가전업계 등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이 첨단반도체에 이어 구형 반도체까지 대중 수출 제재에 나섰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제한 범위를 넓히며 맞불을 놓고 있다. 당장 국내 기업들의 피해는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갈수록 커지는 공급망 불확실성에 기업들은 미중 갈등 확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전업계는 구형 반도체가 범용이기 때문에 중국산을 수입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구형 반도체 시장 1위는 대만(49%)이다. 중국산이 아니더라도 구형 반도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2020년에 코로나19와 공급망 위기를 계기로 수입처 다변화에 나섰다”며 “미국 정부에서 중국산 구형 반도체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더라도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중국은 8나노미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 구형 반도체에 집중 투자하며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중국의 ‘희토류 가공기술 수출 금지’ 조치가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중국 정부가 갈륨·게르마늄·흑연 수출 통제 조치를 내린 데 이어 희토류 규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AEA)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량 60%를 점유하고 있다. 가공·정제산업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이 직접적인 규제 대상은 아니지만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어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반도체업계 관계자도 “무게가 가벼운 경희토는 다른 국가에서도 가공할 수 있지만 중국보다 인건비가 높은 게 현실”이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공급망 다변화를 달성했지만 가격이 올라갈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완성차업계는 미국의 중국산 범용 반도체 제재 움직임으로 인한 피해는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다른 산업군과 비교했을 때 완성차 산업은 생산시설이 들어선 국가 내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경향이 뚜렷한 대표적인 역내가치사슬(RVC) 구조를 갖추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중국에서 수급하는 반도체 자체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미국의 제재에 대응해 중국이 전기차 핵심 부품인 구동모터용 영구자석을 만드는 데 필요한 희토류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완성차업계는 전 세계 3위의 희토류 생산국인 호주에서 자원을 공급받기로 하는 등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모터를 개발해 공급망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목표다.
미중분쟁 후폭풍에 시달리는 국내 기업들을 위해 정부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22일 정부는 ‘제4차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열어 반도체와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4개 첨단산업을 키우기 위해 14조7000억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작년보다 13.8% 증가한 규모다.
또 경기 용인·평택, 경북 구미(반도체), 충북 청주, 경북 포항·울산(이차천지) 등 전국 7개 특화단지를 신속하게 조성하기 위해 지원을 강화한다. 특화단지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정부에 따르면 7개 특화단지에서 필요한 전력량은 15기가와트(GW) 이상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또 2030년부터 2036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6기를 용인 산단 내 이전·건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