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덕구'에 출연한 배우 이순재가 2018년 3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KoreaTV.Radio Steven Choi 기자 | 한국 방송·연극 역사의 산증인이자 현역 최고령 배우로 끝까지 무대를 지켜온 국민배우 이순재가 2025년 11월 25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그는 구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연극·드라마·예능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미국에서도 시니어고(SeniorGo), 메디컬 그룹(Medical Group) 등 한인 대상 헬스케어·시니어 케어 브랜드의 전속 광고모델로 활약하며 미주 한인사회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유족에 따르면 이순재는 이날 새벽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서울로 이주한 그는 광복과 한국전쟁이라는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었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햄릿’에 매료되어 배우의 길을 결심,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하며 69년이라는 긴 연기 인생의 첫걸음을 뗐다.
1964년 TBC 1기 전속 성우·배우로 브라운관에 진출한 뒤 ‘사랑이 뭐길래’(1991)의 ‘대발이 아버지’로 시청률 65.9%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고, ‘허준’ ‘상도’ ‘이산’ 등 대작 사극에서는 묵직한 카리스마로 극을 이끌었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에서는 ‘야동 할배’라는 파격적인 코믹 연기로 전 세대를 사로잡았고,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빠른 걸음걸이로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으며 청년 못지않은 패기를 보여줬다.

케이블채널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시즌2에 출연한 이순재..
2021년 연극 ‘리어왕’에서는 200분 분량의 방대한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관객과 평단을 놀라게 했고, 2023년에는 체호프의 ‘갈매기’로 연출가로 데뷔했다. 지난해 건강 악화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 직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와 드라마 ‘개소리’에 출연하며 투혼을 불태웠고, KBS 연기대상에서 역대 최고령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미국 활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10년대 중반부터 LA, 오렌지카운티, 뉴욕 등 한인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시니어고 헬스케어, 시니어고 메디컬 그룹 광고에 꾸준히 출연했다. “건강도 연기처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위트 넘치는 멘트와 따뜻한 미소로 한인 어르신들에게 큰 신뢰를 얻었고, 현지 한인 라디오·신문 인터뷰에서도 “미국에 계신 동포분들이 저를 더 예뻐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연기 외길 인생 외에도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에 출마해 당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최근까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후학을 지도했다.
“죽는 날까지 무대에 서겠다”던 약속을 끝까지 지킨 이순재. 140여 편이 넘는 작품, 수많은 별명, 그리고 세대를 넘어선 사랑으로 대한민국 연기 역사 그 자체였던 그는 이제 영면에 든다. ‘대발이 아버지’부터 ‘리어왕’까지, 시대와 국경을 넘어 모두의 ‘국민 할배’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