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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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수산물과 원산지 속인 바지락 파문

"산지 위장은 업계 상식"…믿을 수 없는 일본 방사능 검사 기준치

문제 불거지면 출하 중단했다 슬거머니 해제 반복

대만 수입금지조치 해제에 '한국도 수입하라' 압박 분위기

(취재-도쿄 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한일 갈등 사안 중 하나인 후쿠시마(福島) 수산물이 최근 일본에서 다시 뉴스의 소재가 되고 있다. 엉뚱하게도 대만이 계기를 제공했다.

대만 행정원(내각에 해당)이 후쿠시마를 비롯한 일본 5개 현(縣·광역자치단체)의 식품 수입금지 조치를 이달 하순부터 대부분 해제하겠다고 발표하자 여전히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한국 등의 대응에 관심이 쏠린 것이다.

대만이 수입금지 해제 방침을 표명한 직후인 8일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현재도 수입 규제를 시행하는 중국이나 한국과 규제 해제를 위해 어떻게 협의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일본 관방장관은 "일본산 수산물 등에 대한 수입 규제 조치에 대해 여러 기회를 통해 한국 측에 규제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면서 조기 철폐를 강하게 요구할 생각이라고 답변했다.

대만이 후쿠시마 식품 수입 금지 해제에 나서는 것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 외교가의 주된 해석이다.

공교롭게 한국 정부 역시 머지않아 CPTPP 가입을 신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본 측에서는 한국이 수산물 수입금지를 해제하도록 CPTPP를 활용하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은 일본 식품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해제하지 않는다면 CPTPP에 참가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과학적 근거가 없는 채 원전 사고의 소문을 부추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10일 지면에 실은 사설로 한국을 몰아세웠다.

한국은 CPTPP 가입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일본을 포함해 어느 한 회원국이라도 반대하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대만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한국이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를 계기로 일본 측이 '한국이 근거 없이 후쿠시마산 식품에 대한 나쁜 평가를 부추긴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한일 양국이 그간 거쳐온 과정에 비춰보면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본은 2013년 9월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수산물을 전면 수입 금지한 것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부당한 조치라고 주장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바 있다.

하지만 무역 분쟁의 최종 판단 권한을 지닌 WTO 상소기구는 한국의 조치가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며 부당한 무역 제한이 아니라고 2019년 4월 판정했다.

일본이 평소 강조해 온 국제법에 비춰볼 때 한국의 수입금지는 부당한 조치가 아니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그런데 대만이 CPTPP 가입을 위해 전략적으로 후쿠시마산 식품을 수입하기로 하자 이를 계기로 일본이 다시 한국을 압박하려는 조짐이 보이는 상황이다.

후쿠시마 식품이 안전하다는 일본의 주장을 뜯어보면 현재 운용 중인 검사 및 유통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사 및 모니터링을 거쳐 방사성 세슘이 일본 정부 허용 기준을 충족하는 식품만 유통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일본 정부는 일반 식품의 방사선량(세슘 기준)을 1㎏당 100㏃(베크렐)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후쿠시마 수산물의 경우 현지 어업협동조합은 당국의 지도를 받아 우선 자체적으로 방사선량 검사를 한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세슘' 조피볼락(후쿠시마=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021년 3월 3일 오전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소재 오나하마어시장 검사소에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조피볼락이 양동이에 담겨 있다. 2021년 2월에는 일본 정부 기준치의 5배를 넘는 방사성 물질이 조피볼락에서 나오면서 이 어종의 출하가 한동안 중단됐다.

검사 및 유통 기준은 이렇다. 자체 검사 결과 25㏃(베크렐) 이하이면 바로 출하한다. 25㏃을 넘으면 후쿠시마현이 정밀 검사해 50㏃ 이하로 판명될 때만 유통한다.

1차 검사에서 정부 기준의 4배를 충족하지 못하면 정밀 검사를 하며, 최종적으로 정부가 정한 것보다 2배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것만 유통하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일본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빈틈이 있다. 검사는 전수가 아니라 어종별로 표본 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기준치를 넘는 개체가 유통될 가능성이 제로라고 말할 수 없다.

작년 2월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조피볼락(일명 '우럭')에서 1㎏당 500㏃의 세슘이 검출된 적이 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정한 식품의 허용 한도의 5배,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 출하 허용기준의 10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산 조피볼락은 출하를 중단시켰다가 작년 12월 해제했다.

하지만 올해 1월 잡힌 조피볼락에서 1㎏당 1천400㏃의 세슘이 검출됐고 최근 다시 출하 제한 지시가 내려졌다.

고농도 세슘에 오염된 조피볼락이 한 마리도 유통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또 다른 문제는 일본의 유통 시스템을 신뢰할 것인지의 문제다.

최근 일본에서 문제가 된 사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약 2개월 전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의 한 수산물 가공업체가 중국산과 일본 후쿠오카(福岡)산 바지락을 구마모토산이라고 원산지를 속여 판매한 것이 적발됐다고 일본 농림수산성이 발표한 바 있다.

당시에는 한 양심 불량 사업자의 불법행위 정도로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속이기가 만연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 전개됐다.

교도통신 등의 보도에 의하면 전국 광역 소매점에 대해 실태 조사를 한 결과 구마모토산이라고 표시된 바지락이 작년 10∼12월 석 달 동안 2천485t 판매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2020년 1년 동안 구마모토현에서 어획된 바지락 총량(21t)의 약 118배에 달한다.

연간 어획량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유통된 바지락 대부분이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한 채 판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바지락 50점을 분석해보니 구마모토산이라고 된 것에는 대부분 중국이나 한국산 등 외국산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명됐다.

일본 최대 일간지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중국이나 한국에서 수입한 바지락을 구마모토 산으로 출하했다. 산지 위장은 업계의 상식이었다"는 후쿠오카현의 한 수산물 가공 판매회사 사장의 증언을 지면에 싣기도 했다.

결국 일련의 사태로 구마모토현은 바지락 출하를 2개월 동안 중단하기로 했다.

이번 사안은 외국산 바지락 등을 구마모토산이라고 속인 것이라서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안전성과는 무관하다고 강변하는 이들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후쿠시마 식품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하기 전에 일본의 시스템이 신뢰받을 수 있을지 돌이켜보는 일이 먼저인 것 같다.

타국 식품을 수입할 때 불확실성과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할지에 관한 정책적 판단은 각국 정부가 내려야 하는 주권에 속하는 사안이다.

WTO 역시 식품 수입 규제에 관해 각국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