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8 (일)

닫기

"'재벌집 막내아들' 실화야?"…삼성·현대 등 대기업 일화 소환

"허구 섞인 현대사 몰입감 높아"…이병철 회장 '초밥 에피소드' 녹여
IMF·닷컴버블·펀드열풍…1980년대 후반부터 경제사 흐름 한눈에

 

KoreaTV.Radio 이고은 기자 | 송중기가 30여 년 전 과거로 돌아가 다시 인생을 사는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시청률 22%를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18일 방송가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따라가며 펼쳐지는 이 드라마는 판타지 시대극이지만, 실화에 상상력을 더한 '웰메이드 팩션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그만큼 현실감 있게 그렸다는 의미다.

특히 등장인물들과 기업들이 실제 인물과 기업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드라마가 실제 어떤 인물, 기업을 모티브로 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추리가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성민이 연기한 진양철 회장은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을, 극 중 순양그룹과 대영그룹, 아진자동차, 순양백화점 등은 삼성, 현대, 기아, 신세계백화점 등을 연상케 한다는 평이 많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닷컴 버블, 펀드 열풍 등 굵직굵직한 경제적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녹이며 극의 변곡점으로 활용하는 점도 재미와 사실감을 불어넣고 있다.

 

◇ "이거 삼성 이야긴가요?"…실화 에피소드 쏠쏠한 재미

드라마는 매회 시작과 함께 '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기관, 기업,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안내하지만, 시청자들은 실제 인물과 기업을 대입시키며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극 중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나오는 순양은 반도체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는 등 여러 면에서 삼성과 닮아있다.

이성민이 연기한 진양철이 정미소로 첫 사업을 시작해 순양을 키웠다는 스토리는 이병철 회장이 마산 협동정미소로 사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맞아떨어지고, 순양자동차에 애정을 쏟는 모습은 삼성이 외환위기 이후 프랑스 르노그룹에 매각한 삼성자동차를 연상케 한다.

 

 

진양철이 초밥에 든 밥알의 개수를 주방장에게 묻는 에피소드 역시 이병철 회장이 신라호텔 주방장에게 건넸던 일화로 유명하다. 진양철의 머리 스타일, 안경테 등 외관이나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점도 닮았다.

이성민은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진양철이라는 캐릭터가 우리 현대사의 어떤 여러 인물이 회상되는 그런 지점도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 지점을 조금 신경 쓰면서 연기했다"고 말했다.

 

극 중 순양의 라이벌이자 자동차 업계 1위로 나오는 대영은 삼성과 경쟁 관계에 있던 현대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비친다. 순양과 대영은 아진자동차 인수전에도 뛰어드는데 이는 기아차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삼성과 현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드라마의 원작 웹소설을 집필한 산경 작가도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 현대 등을 모델로 삼은 것은 맞지만 드라마에는 허구도 많이 섞여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 밖에도 진양철의 고명딸 진화영(김신록 분)이 운영하는 순영백화점은 이병철의 막내딸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오버랩 되면서 신세계백화점을, 부도를 맞은 한도제철은 IMF 외환위기의 시작이 된 한보철강을 소환한다.

온라인에는 이런 드라마 내용과 실제 기업이나 인물들을 비교해 놓은 글도 상당하고, '진양철이 차를 좋아하는 건 이건희 회장한테서 따온 것 같다', '아진차 인수한 것 보면 순양은 삼성이 아니고 현대 아니냐' 등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한다.

 

 

◇ 경제위기를 기회로 잡는 '백발백중' 투자…"판타지 시대극"

등장인물과 기업들은 현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놨다면, IMF 외환위기, 닷컴 버블, 펀드 열풍 등은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면서 극에 현실성을 더한다.

또 이 경제 흐름을 이미 알고 있는 진도준(송중기)이 정답을 알고 있는 시험을 치르듯 '백발백중' 투자를 펼치는 점은 쾌감을 안긴다.

 

진도준은 진양철 회장에게 용돈 대신 분당 땅 5만평을 받는데, 이 돈은 분당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무려 240억원으로 불어난다. 드라마에 토지매각 보상금으로 간접적으로 언급된 신도시 건설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도준의 투자는 이때부터 본격 시작된다. 국가 경제를 흔들어놨던 위기는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투자 기회로 활용된다.

 

IMF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도산하는 가운데 진도준은 막대한 달러를 바탕으로 아진자동차 인수 전에 뛰어든다. 분당 땅으로 번 돈 240억원을 모두 달러로 바꾸고, 아마존을 떠올리는 '아마좀' 주식을 사 900% 수익률을 올린 덕분이다.

진도준의 파트너인 투자자 오세현(박혁권)이 "외환위기, 당신은 알고 있었지? 다 오늘을 위해 달러를 벌기 위해서였어"라고 의심할 만한 투자 수완이다.

 

 

여기에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초반 닷컴버블로 역사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코스피 종목도 등장한다. 극 중 주식 폭락으로 진화영을 몰락시킨 종목 뉴데이터테크놀로지는 실제 코스피 종목인 새롬기술 이야기로 추정된다.

새롬기술은 1주당 2천원도 안 되는 주가가 닷컴버블을 타고 30만원까지 치솟았지만, 결국 거품이 꺼지면서 폭락했다. 진도준은 말 그대로 뉴데이터테크놀로지 주가가 '꼭짓점'을 찍은 순간 주식을 전량 털어 최대 수익을 올린다.

 

게다가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한 미국 9·11 테러에 모두가 폭락 장을 예상할 때 '바이 미라클 펀드'를 출시해 투자의 큰 흐름을 바꾸며 순양증권을 손에 넣는다. '바이 미라클 펀드'는 외환위기 때 현대증권이 출시한 '바이 코리아 펀드' 상품을 본뜬 것으로 보이며, 당시 펀드 열풍을 불러올 만큼 히트를 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재벌집 막내아들'은 판타지가 들어갔지만, 어찌 보면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일종의 시대극"이라며 "그 시대를 경험한 세대는 '아 나는 왜 분당 땅을 안 샀을까'라면서 드라마에 빠져들고,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도 '저 때는 저런 일이 있었네'라며 보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