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마치 거인이 힘껏 밀어 힘없이 쓰러진 듯한 주택들, 극심한 가뭄 때 논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선들의 모습을 한 채 쩍쩍 갈라진 도로들. 새해 첫날 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가나자와(金沢)시를 뒤흔든 지진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모습들이었다. 기자는 규모 7.6의 강진이 강타한 1일 당시 '진도 5강'의 지진이 관측되며 역시 큰 피해가 발생한 가나자와시를 2일 찾았다.
일본 기상청의 지진 등급인 '진도'는 절대 강도를 의미하는 규모와는 달리 지진이 일어났을 때 해당 지역에 있는 사람의 느낌이나 주변 물체 등의 흔들림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상대적 개념이다.
진도 5강은 대부분의 사람이 뭔가를 붙잡지 않고는 걷기 힘든 수준의 흔들림이다.
약 400㎞ 떨어진 도쿄에서 이번 지진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이시카와현에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한 시간가량 비행기를 타고 이시카와현 고마쓰 공항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자위대의 수송 헬기였다.
자위대 헬기 10여대가 활주로 옆에서 프로펠러를 작동하면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거나 일부는 공중에 떠서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이 헬기들은 지진 피해가 큰 노토반도에 구조 작업을 나가는 자위대 지원 인력과 식량 등을 나르는 중이라고 했다.
도로가 끊기는 등 지진 피해로 재해 현장 접근이 어려워지자 하늘길로 구호물자를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공항을 나와 가나자와시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자 운전사는 가장 먼저 "지진의 영향으로 고속도로가 통행금지 상태라 국도를 이용한다"고 알렸다.
공항에서 불과 30㎞가량 떨어진 가나자와 시내까지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렸다.
주택 4채가 붕괴하면서 이번 지진으로 가나자와시에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동부 다카미신마치(田上新町)는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20분가량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였다.
택시 운전사에게 사고 발생지에 가달라고 말하자 "지진으로 아직 그곳은 산사태가 날 우려가 있어 위험하다"며 만류했다.
부탁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자 운전사는 차에서 내리는 기자에게 "어제 이후 계속 여진이 발생하고 있다"며 "언제 여진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오후 6시께 도착한 현장은 사방이 깜깜한 어둠에 잠겨 있었고, 사람들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장 접근이 여의찮아 차에서 내려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언덕 밑으로 처참하게 완전히 쓰러진 주택의 지붕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전날 지진으로 산사태가 나면서 언덕 위에 있던 주택 4채가 옆으로 넘어졌다고 했다.
승용차들도 이 주택 건물들에 깔렸지만, 주민들이 모두 외출해서 다행히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고 주택 주변 지역은 이번 지진으로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기면서 평소라면 저녁을 준비하거나 식사할 시간인 오후 6시인데도 어둠에 뒤덮인 채 쥐 죽은 듯 고요했다.
300m가량을 걸어 사고 현장에서 벗어나자 겨우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주민 한 명을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스즈키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이 주민은 전날 지진 상황에 대해 기자가 묻자 "올해 76살이고 가나자와에는 60년가량 살아왔는데 이번 지진이 가나자와에서 경험한 지진 중 가장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3∼4분가량 옆으로 심하게 흔들리면서 책장에서 책이 떨어지고 옷장 문이 심하게 흔들렸다"며 "너무 진동이 강해서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전날의 기억을 힘겹게 떠올렸다.
붕괴된 주택 주변 주민들은 지진으로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기면서 인근 피난소인 다카미공민관(마을회관)에 묵고 있었다.
기자가 이곳을 찾아가자 자신을 직원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정중히 취재를 거절했다.
그는 "피난민들이 어제부터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모두 힘든 상태"라고 전했다.
이 마을회관 등 피난소에는 32세대, 89명이 피난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직원 역시 마을회관에서 발길을 돌리는 기자에게 "여진이 아직 계속되고 있다"며 조심하라는 말을 들려줬다.
가나자와시에는 이 밖에도 시내 곳곳에 아스팔트 도로가 두부처럼 쩍쩍 갈라지는 등 지진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