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TV.Radio 김재권 기자 | 계엄 사태 여파로 한국증시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유럽, 중국 등 다른 주요 경제권도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나스닥 지수가 11일 사상 처음으로 20,000선을 돌파하는 등 미 증시가 '나홀로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347.65포인트(1.77%) 오른 20,034.89에 마감했다. 나스닥 지수가 20,000선을 넘어선 것은 1971년 지수 출범 이후 처음이다.
나스닥 지수는 1971년 100으로 처음 출발해 1995년 7월 만에 사상 첫 1,000선을 넘어서며 10배가 됐다. 그 뒤로 지난 2020년 6월 10,000선을 처음 넘어서며 다시 10배로 뛰었다.
처음 10배가 되는 데 걸린 기간은 24년, 다음 10배가 되는 데 걸린 기간은 25년이었다. 이후 10,000선에서 20,000선으로 2배가 되는 데 걸린 기간은 4년 6개월이었다.
나스닥 지수는 2023년 한 해 동안 무려 43% 급등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10일까지 31% 오르며 파죽지세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매그니피센트 7'으로 불리는 7개 빅테크가 미국 증시를 이끌었는데, 이런 경향이 올해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인프라 관련 업종과 금융 업종의 강세가 이어진 것도 지수 상승에 훈풍으로 작용했다.
특히 지난 11월 미국 대선 이후로 뉴욕증시는 규제완화 기대에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의 최대 수혜기업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주가가 대선 이후 10일까지 55%나 올랐다.
헤지펀드 창업자 출신의 스콧 베센트를 재무장관으로 지명하면서 급진적인 경제정책 시행 우려를 덜며 월가를 안도하게 한 것도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요인이 됐다.
거시경제 면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둔화 흐름을 지속하는 가운데 탄탄한 소비를 중심으로 급격한 경기 하강 우려가 덜어진 게 투자자들에 '골디락스'(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 환경을 제공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비록 속도 조절에 나서고는 있지만 12월 금리 인하를 사실상 예고하며 금리 인하 사이클을 지속하고 있다.
이 같은 증시 강세는 유럽이나 중국, 한국 등 주요 경제권에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유럽 주요 기업으로 구성된 유로스톡스50 지수는 올해 4월 고점을 아직 회복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의 코스피는 작년 말 대비 8% 하락한 상태다.
월가 주요 금융회사들은 내년에도 뉴욕증시가 랠리를 이어가며 '미국 예외주의'가 지속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2025년 말 스탠더드앤드(S&P) 500 지수가 6,50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도이체방크는 7,00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0일 종가 기준으로 내년 지수 상승률이 8%, 16%에 이를 것으로 각각 내다본 것이다.
하지만 월가 일각에선 뉴욕증시가 거품 수준에 이르렀다는 경고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지금 당장 거품이 꺼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뉴욕증시의 밸류에이션(평가가치)가 역사적인 고점으로 올라 향후 수익률 저하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코스틴 전략가는 최근 향후 10년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수익률이 연평균 3%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이전 수십년간 수익률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역시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S&P 500 지수 실질수익률이 연평균 0.5%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94)이 주가의 고평가 여부를 진단할 때 쉽게 사용하는 이른바 '버핏 지수'로 봐도 주식 평가가치는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버핏 지수란 한 국가의 주식시장 전체 시가총액을 그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으로, 주식 시장의 규모가 경제 규모에 비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낸다.
윌셔 5000 지수로 산출한 미국의 버핏지수는 약 208%로, 지난 2000년 기술주 거품이 절정에 달했을 때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난달 발표한 실적에서 주식을 팔고 현금을 사상 최고치로 챙겨놓은 것으로 드러나 시장 일각의 '거품론'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AI 붐'의 수혜가 엔비디아 등 일부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기업)에 집중된 가운데 AI의 수익창출 가능성에 우려의 시각이 나오는 것도 주가 고평가 시각의 주된 논거가 되고 있다.
월가에선 내년 뉴욕증시가 약세장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BCA리서치는 소비둔화와 고용약화 등을 근거로 내년 뉴욕증시가 약세장에 들어갈 것이라며 증시 낙폭이 35%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는 S&P 500 지수가 최소 50차례 최고치를 경신한 해의 이듬해에는 지수 수익률이 평균 -6%였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S&P 500 지수는 올해 들어 전날까지 최고치를 57번 갈아치운 바 있다.
시장 일각의 소수 의견이긴 하지만 거품이 갑자기 꺼질 것에 대비해 투자자들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는 강도 높은 경고도 나온다.
'블랙스완' 이벤트에 베팅하는 전략으로 유명한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의 마크 스피츠나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인터뷰에서 중앙은행의 무제한적 돈풀기 탓에 형성된 '인류 역사상 최악의 거품'이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