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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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탄핵소추] 정치신인으로 대권…계엄선포 11일만에 자멸위기

조국 사태 수사하며 文정부와 결별…정계입문 8개월여 만에 대통령 당선
임기 내내 김건희 여사 리스크 발목…'강골 검사' 대신 불통 이미지
국무위원들 반대에도 계엄선포 강행 자충수…스스로 나락의 길로

 

KoreaTV.Radio 김재권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서게 됐다.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과 함께 돌풍을 일으키며 제1 야당의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찼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벌인 끝에 대권을 잡았다. 정치권에 투신한 지 8개월여 만이었다.

그러나 초고속으로 정점에 오른 윤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라는 자충수를 둔 지 11일 만에 자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윤 대통령이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윤 대통령은 국정원과 국방부를 상대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다 박근혜 정부와 정면충돌한 끝에 대구고검으로 좌천당했다.

그때 남긴 말이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외압 사실을 폭로하면서 한 이 발언으로 윤 대통령은 대중의 뇌리에 '강골 검사'로 자리 잡았다.

 

박근혜 정부 후반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윤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 규명을 위한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해 재기의 날개를 폈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문재인 정부와 정면충돌했고, 보수 진영의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결국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에 입당해 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로 직행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를 0.73%포인트 차이로 꺾고 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두 정권에 걸쳐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선 끝에 자신이 권력이 된 것이다.

 

어퍼컷 세리머니로 인사하는 윤석열 당선인

 

그러나 영광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 기준 취임 첫 주 52%를 기록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으며, 탄핵 직전 주에는 11%를 기록했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탄핵 소추 직전까지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야당은 김 여사 일가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과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지난해 말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이 불거지고, 올해 9월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2022년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 등에 김 여사가 개입했다고 폭로하면서 김 여사 리스크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났다.

 

윤 대통령은 야당과 대화와 타협보다는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갔다.

압도적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은 네 차례에 걸친 김 여사 특검법 등 여러 법안을 단독 처리했고, 윤 대통령은 그럴 때마다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맞섰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25건의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12년간 재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45건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여기에 감사원장, 방송통신위원장, 행정안전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와 검사에 대한 탄핵까지 이어지면서 윤 대통령과 야당의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자유총연맹 총재 기념사 듣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후보

윤 대통령은 여당과도 불화했다.

지난해 12월 여권 주류는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했던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앉히는 데 성공했다.

넉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양측 관계는 급속도로 틀어졌다. 이 역시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입장차가 결정적이었다.

 

윤-한 갈등이 빚어낸 파열음은 당 외부로 흘러 나갔고,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여당은 친윤(친윤석열)계와 친한(친한동훈)계로 분열했고, 친한계의 이탈은 탄핵 가결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야당과의 충돌, 당정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갖가지 의혹까지 꼬리를 물자 윤 대통령에게는 강골 검사 이미지는 사라지고, 불통과 고집이라는 부정적인 그림자가 뒤따르게 됐다.

 

윤 대통령은 차츰 배타적으로 변모했다.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 소집된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국무위원이 계엄에 반대했지만, 윤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

고립을 자초한 윤 대통령은 결국 비상계엄 선포라는 무리수를 선택했고,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안 의결로 6시간 만에 계엄 사태가 종료되며 스스로 독배를 마신 셈이 됐다.

 

국회 본청 진입하는 계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