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TV.Radio 김재권 기자 | 과거 ‘PC의 제왕’ 델(Dell)이 인공지능(AI) 바람을 타고 부활하고 있다. 미국 PC 제조 업체인 델은 1990년대 전 세계 PC 시장의 전성기를 이끌며 2001년 업계 1위에 올랐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등장으로 PC 시장이 침체하며 날개가 꺾였다.
반전은 최근의 AI 붐과 함께 왔다.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AI 서버를 앞세워 전성기 때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주가는 올해 들어 2배 가까이 올랐고 AI 서버 매출은 급성장하고 있다. 창업자 마이클 델(59) 최고경영자(CEO)는 개인 자산이 1000억달러를 넘기며 올해 처음으로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이름을 올렸다. 부자 순위로는 젠슨 황(61) 엔비디아 CEO보다 앞선 세계 13위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PC 제조업체에서 AI 시대 인프라 리더로 델이 대변신을 꾀하고 있다”며 “창업자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AI 붐을 준비한 결과”라고 보도했다.
‘델 변신’의 중심에 창업자 마이클 델이 있다. 1984년 열아홉에 델을 창업, 스물일곱에 경제지 포천 선정 500대 기업인에 최연소 CEO로 이름을 올렸다. 아직까지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가 500대 기업인에 꼽힌 게 스물여덟 때였다. 2001년 델은 PC 1위에 올라섰다. 이후 스마트폰의 등장, 레노버 등 중국 저가 PC의 공세에 델의 성장세가 꺾였다. 델 CEO는 창업 20년 만인 2004년 전문 경영인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했다.
퇴임 3년 만에 다시 회사에 복귀한 델 CEO는 주가가 계속 추락하자 2013년 244억달러를 들여 델의 주식을 모두 사들인 뒤 스스로 회사를 상장 폐지했다. 금융권 등으로부터 빌린 돈만 170억달러에 달했다. 비공개 기업으로 전환한 그는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으로 기업의 사업을 재편했다. 델이 AI 인프라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 당시 델 CEO가 내린 결단 때문이다. 2015년 데이터 저장장치(스토리지) 세계 1위 업체인 EMC를 670억달러(약 96조원)에 인수했다. ‘세기의 빅딜’로 불리는 거래였다. 당시 시장에선 “낡은 사업 모델을 보완하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델은 인수합병을 계기로 AI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추진했다. AI에 최적화된 신규 서버들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는 한편 엔비디아, 메타, 허깅페이스 등 AI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관련 사업을 확장해 왔다. 올해는 AI 관련 서비스를 결합한 종합 AI 플랫폼인 ‘델 AI 팩토리’를 내놨다.
AI 기업으로 전환을 시도한 지 약 8년 만인 지난해부터 델 CEO의 성과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델은 올해 ‘AI 서버 기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서버는 중앙처리장치(CPU) 등 반도체를 조립해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일종의 대형 컴퓨터다. 이런 서버를 서로 연결하고, 냉각 시설 등을 갖춘 것이 데이터센터다.
델은 엔비디아나 인텔이 만드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가속기 등을 활용해 AI용 데이터센터와 서버를 구축한다. 델의 올해 서버·네트워킹을 포함한 ISG(인프라 스트럭처 설루션 그룹) 부문 매출이 전체의 절반에 달한다. 올해 1~3분기 서버 관련 매출은 각 55억달러, 77억달러, 74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2~80%씩 성장했다. 제프 클라크 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콘퍼런스 콜에서 “AI에 최적화된 서버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며 “서버 인프라에 대한 주문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델의 성과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WSJ에 따르면 델은 지난 2년간 12만페타바이트를 저장할 수 있는 대규모 데이터 저장 장치를 기업이나 기관에 판매했다. 오픈AI가 챗GPT-4o 훈련할 때 쓰인 데이터 양이 1만페타바이트로 알려졌다. 이 기간 델 테크놀로지스에서 AI 서버 관련 고객은 30~40곳에서 2000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델은 WSJ에 “아마도 몇 분기 안에 고객사가 4000곳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클라크 COO도 “PC 사업부는 매년 2%씩 성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서버 및 인프라 부문은 매년 7%씩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마이클 델(59)
1965년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1984년 텍사스대 재학 중 기숙사 방에서 단돈 1000달러로 델 컴퓨터를 창업했다. IBM의 개인용 컴퓨터(PC)를 조립해 맞춤형 제품으로 만들어 택배로 보내는 사업이었다. 이후 자체 PC를 만들어 스물일곱에 경제지 포천 선정 500대 기업인에 최연소 최고경영자(CEO)로 이름을 올렸다. 델은 2000년대 초반 PC 시장 1위에 올랐으나, 모바일 시대 흐름을 타지 못하고 하락의 길을 걸었다. 2015년 세계 최대 데이터 저장 기업인 EMC를 인수하며 서버 업체로 변신했다. 이것이 인공지능(AI) 시대에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