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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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이철수' 구한 한인언론인 이경원씨 별세

'프리 이철수' 구명운동, 노동자 소수자 인권 보도에 한평생

 

탐사저널리즘의 모범을 보인 재미언론인 이경원 씨. 미국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저널리즘의 대부'로 불렸다.

 

KoreaTV.Radio 제임스 유 기자 |  미국 주류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사형수 이철수씨의 누명을 벗겨낸 이경원씨가 지난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7세. 1960년 간호사 출신 페기 플라워씨와 결혼한 그는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살아왔다. 

 

1928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고려대 졸업 후 1950년 미국으로 이민, 1956년 테네시주 킹스포트 타임앤뉴스 기자로 입사했다. 아시아계 이민자 최초의 주류 일간지 기자였다. 애팔래치아 광부의 집단 진폐증 문제를 비롯, 낮은 곳을 향하는 탐사 보도 기사의 모범을 보여줬다. 캘리포니아로 옮긴 후 훗날 영화 ‘트루 빌리버’ 다큐멘터리 ‘프리 이철수’로 제작되는 ‘운명의 기사’를 썼다. 

 

1973년 차이나타운 갱단 두목 살해 누명을 쓴 이철수씨 기사를 무려 120건이나 써 구명 운동을 촉발시켰다. 목격자가 아시아인 얼굴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다큐멘터리 '프리 이철수' 포스터 앞에 선 이경원 씨. /연합뉴스

 

지난 92년 간 이식을 받은 후에도 열정적으로 활동한 그는 ‘아시안-아메리칸 저널리즘의 대부’로 평가받는다. 장례식은 비공개로 치러지며, LA에서 추모식이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