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당역 지하철 문화공간에서 또 무슨 공연이 펼쳐질까 하며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공연장으로 옮겨진다. 따닥따닥 Caster net의 박자에 맞추어 스페인의 상징이라 불리는 플라밍고가 울려 퍼진다. 그 신나는 장면의 유혹은 나를 마치 등산로에서 옆길로 미끄러지듯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나는 어느새 정열이 튀는 리듬을 몸짓으로 반응하는 군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된다. 만 차에 시달려서일까 무표정한 사람들, 삶에 지친 탓인지 아니면 집에 들어가 봐야 따뜻하게 반겨줄 가족이 없어 외로움에 젖어 있음인지, 침침했던 얼굴들이 어느새 환한 미소와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워한다. 그곳에서는 매번 다른 이벤트가 펼쳐진다.
어느 날은 색소폰, 또 어느 날은 아코디언 공연 등 다양하다. 음악은 마음의 창문이 되기도 하고 막혀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열어주는 소통의 통로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9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사당역에 도착하자마자 낯익은 노래가 귀를 자극했다. 리듬을 따라 가까이 가 보니 인도네시아 팀이 자기 나라의 전통 의상인 바띡 차림으로 기타 반주에 맞추어 춤과 노래를 즐기고 있었다.
“사뚜 사뚜 아쿠사양 이브, 두아 두아 주가 사양 빠빠, 띠가 띠가 아듀 사양 깍깍 사양 썸모아냐.” 가족의 사랑을 표현하는 가족 창이다. 번역하면 “첫째 엄마를 사랑하고 둘째 아빠를 사랑하고 셋째는 모두를 다 사랑한다”는 뜻의 국민 동요다.
과거 남편의 일터였던 인도네시아 문화를 만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내 일터이던 명동 ‘시공관’ 바로 앞에 우리나라의 문화 예술을 온 세상에 한 등급 올려놓았던 음악계의 거장 정경화씨, 정명훈씨와 명화씨 부모님의 건물이었던 ‘시라노 백화점’, 그 지하에 헤어살롱을 경영하고 있었다. 남편의 회사에서 인도네시아에 가족이 함께 기거하길 계속 권유해 더 버틸 수 없어 번창해가던 내 일터를 접고 남편의 일터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거처를 옮겼다.
그때도 빼차를 타고 동네 어귀를 지날 때면 자주 듣던 인도네시아 국민 동요다. 세상 어디라도 사랑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더욱 낙천적이다. 흔히 관광객들은 이들의 교통질서와 교육환경, 또는 문화수준을 살펴보고 난 후 너무나 열악하다고 동정 어린 눈빛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러나 모든 인간이 갈망하는 행복지수는 그들이 훨씬 우세할 것이다. 물질의 유무를 막론하고 불평불만이 없고 빈부의 격차 또한 “알라”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소박한 그들을 누가 업신여길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함께 박수갈채로 격려해 주었다.
누군가 중절모자를 벗더니 촌지를 넣었다. 피로회복제와 같은 작은 사랑의 표현이다. 나는 행복한 나눔의 현장에서 감동을 안고 나그네들의 틈을 비집고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오르곤 한다.
이렇게 노상 공연장에서 대중과 함께 잠시 흥겨움에 젖노라면 피곤은 어느새 말끔히 씻겨 나가고 다리에 새 힘이 솟는 기분은 어쩐 일일까. 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영혼의 쉼터를 수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때로는 체면의 옷이 나를 너무 무겁게 짓눌렀을 것이다.
대중교통은 가끔 들썩이는 어깨 위의 작은 자만심까지도 끌어내리고 틈만 나면 좁혀지려하는 내 마음의 공간에 행복을 채워주며 내 시야를 넓혀주는 카타르시스이다.
<꽃처럼 살자>
누가 심었을까
이 풍성한 꽃밭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슬 맺힌 한 떨기 장미
땅속에서 솟아나왔다
땅이 진동하는 산고의 고통
입술 깨무는 절규를 삼키고
죽음에서 눈을 떴다
온몸 흠뻑 젖은 이슬은
밤새 흘린 눈물이다
심장에서 짜낸 붉은 선혈
꽃잎마다 붉디붉게 물들였다
우연히 피어난 꽃은 없다
너와 나 꽃밭으로 가자
우리 꽃처럼 살자
◇김국에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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