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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노란 잠바의 젊은이들

  • 작성자 : Sandy
  • 작성일 : 2023-04-07 22:28:00
  • 조회수 : 54
  • 추천수 : 0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모두 같은 디자인의 두꺼운 노란 점퍼를 입고 있었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마다 남성이었다. 인도네시아 국기가 붙은 점퍼는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두터웠다. 왠지 기대에 들떠 외국에 출국하는 모습이었지만 통일된 성별 때문에 일이 목적인 것으로 보였다. 느낌상 목적지가 한국일 것 같았다. 나는 저렴한 평일 새벽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공항에 왔다. 그들은 아마 나와 같은 비행기일 것 같았고, 역시 카운터 앞에 그들이 몰려 있었다. 가까이 보자 그들의 소매에는 태극기가 붙어 있고 인도네시아어와 한국어가 혼용된 브로슈어도 들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신나고 활기차 보였다. 서로 밝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단체 여행을 떠나는 모습 같았다.

나는 기다렸다 탑승 수속을 마쳤다. 한산한 새벽 비행기를 기대했지만 한국 노동 시장이 여의치 않아 내 귀국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비행기에 오르자 노란 잠바가 기내를 점령하고 있었다. 내 자리 옆에도 한 노란 잠바가 창가 쪽에 앉아 있었다. 뒷자리와 앞자리에도 모두 노란 잠바들이 앉아 있었고, 내 짝은 그들과 모두 아는 사이인 듯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 짝은 다른 잠바들에 비해 조금 젊어 보였다. 나는 대화를 나누어두면 조금 편해질 것 같아 인도네시아어로 말을 걸었다. 마침 삼 주간 인도네시아어만 사용했던 참이라 일상적인 회화는 편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수기로 불렸다. 영어나 한국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지만, 둘 다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계속 인도네시아어를 쓰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해 보였다. 무엇 때문에 한국에 가니? 일하러. 무슨 일을 한데? 나도 잘 몰라. 바다에서 일을 한데. 그런데 외국에는 가본 적 있니? 없어. 비행기를 타본 적은? 없어. 지금 처음이야. 그는 신기한지 스마트폰으로 비행기 좌석도 찍고 창밖의 구름도 찍어가며 대답했다. 한국어나 영어를 공부했니? 진짜 조금. 거의 못해. 가면 배운다고 했어. 집은 어디야? 자카르타 근처의 시골이야. 음 그렇구나. 그는 천진했고 들떠 보였다. 스마트폰으로 SNS에 사진을 올릴 생각인 듯했다. 자세히 보니 그는 내 생각보다 많이 어려 보였다. 대학은 다녔니? 아니 안 갔어.

비행기가 이륙하자 곧 승무원이 입국 서류를 들고 왔다. 서류를 적는데 내 짝은 머리를 긁고 있었다. 그는 한국어와 영어만 적힌 입국 서류를 알아보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적을 수 있겠지만, 내 짝은 내가 돕고 싶었다. 이리 줘. 내가 다 적어줄게. 그의 여권은 정말 새것이었고 나이는 스물두 살이었다. 서류에 그의 생년월일과 여권 번호와 여권 발급지를 적었다. 그 밑에는 한국의 거주지를 적는 칸이 있었다. 너 한국 어디에서 지낼 거니. 아, 여기 서류가 있어. 그 서류는 노동 허가증 같은 것이었다. 주소는 인천 옹진군의 민가였고, 고령의 여성으로 보이는 이름이 그의 고용주였다. 계약 기간 3년 동안 매일 아침 여섯 시부터 식사 시간 1시간을 제하고 하루 8시간 노동을 한다는 서류였다. 숙식이 보장된다고도 쓰여있었다. 모든 문장이 한국어로만 적혀 있었다. 나는 옹진군의 주소를 영어로 번역해 입국 서류에 적고 그에게 주었다. 다 썼어.

서류를 적자 기내식이 나왔다. 그와 나는 한식을 골랐다. 그는 고추장을 넣지 않고 비빔밥을 먹었다. 너 그런데 한국 음식 먹어본 적 있어? 그는 빙그레 웃었다. 이게 내가 처음 먹는 외국 음식이야. 한 번도 먹을 일이 없었어? 딱히 기회가 없었는데. 그는 승무원에게 콜라를 받아 마시며 웃었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너 그런데 옹진군이 어디인지 아니? 공항 근처라고 했어. 배를 타고 들어간데. 나는 섬을 좋아해. 친구는 공항에서 많이 멀대.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뒷자리의 중년 노란 잠바가 물었다. 나는 신안이야. 공항에서 여섯 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맞아? 응 맞아. 신안에서는 아마 소금을 만들거야. 생선도 잡을거고. 옹진은 아마 게를 잡을거야. 게가 유명해. 아 나는 게를 좋아하는데. 맛있잖아. 그렇지. 맛있지. 나쁘지 않을거야.

 너 네가 들고 있는 계약서가 뭔지 아니? 어떻게 적혀있는지는 아니? 이 계약서가 지켜질 것 같니?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모든 것에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또 표면상으로는 정규 계약서였다. 다만 장소가, 그런데, 한국어라고는 한 마디 못하고 한국 음식도 먹어본 적 없고 교육도 받지 않은 스물두 살이 비행기를 처음 타고 옹진군에 삼 년간 일을 하러 간다고... 우리나라에서 그곳에 일하러 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니? 대신에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는 좋은 사람을 만날 거야. 한국은 날씨가 훨씬 추워. 추위를 조심해야 해. 그러면 한국에 가면 눈을 볼 수 있어? 응. 지금은 너무 늦었고 내년쯤에 보게 될거야. 눈을 사진으로만 봤어. 너무 예쁘겠다. 응. 한국의 눈은 예뻐. 바다에서 보면 더 예쁠거야.

그는 나에게 셀카를 찍자고 했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괜히 악수도 한 번 했다. 그는 신이 난 듯 내게 번호를 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번호를 찍어 주었다. 식사를 마친 그는 불이 꺼지자 노란 잠바들과 함께 잠이 들었다. 나는 화장실에 가면서 눈을 깜빡이는 노란 잠바도, 곤히 잠든 노란 잠바도 지켜보았다. 내 짝은 유독 잘 잤다. 수기. 수기야. 반짝이는 잠바와 브로슈어와 계약서와 기내식으로 미래를 낙관하면 안 돼. 그리고 모두가 너에게 친절하고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지 않아. 이제부터는 누구도 네게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을거야. 지금까지 너에게는... 예외적인...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상대적 우월감인가? 아니, 그냥 우월감인가? 없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걸까? 있다면, 있다면 어떻게 뉘우쳐야 하는 걸까. 스물둘부터 삼 년간 타국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나쁜가? 미래의 자양분이... 이런 것들은 학습된 반응이잖아. 막상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지 너조차도 잘 모르면서. 너부터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스물두 살의 수기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너부터도 잘 모르면서. 비행기는 안전하게 착륙했고 수기는 창밖의 공항을 사진으로 찍었다. 우리는 악수 한 번으로 헤어졌다. 그로부터는 아직 연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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