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TV.Radio 김재권 기자 |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사장) 겸 북미·중남미법인장이 현대차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다. 외국인이 국내 주요 대기업 CEO를 맡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실력이 있으면 국적 나이 성별을 따지지 않겠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인사 원칙이 반영된 결과다. 재계에선 현대차가 스타트를 끊은 외국인 CEO 발탁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첫 외국인 현대차 CEO
14일 산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이런 내용이 담긴 CEO 인사를 15일 발표한다. 현대차·건설·엔지니어링·트랜시스·케피코 등 상당수 계열사 CEO가 교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라이트는 현대차 CEO로 내정된 무뇨스 사장이다. 스페인 출신인 그는 도요타 유럽법인과 닛산 미국법인 등을 거쳐 2019년 현대차에 합류해 글로벌 COO 겸 북미·중남미법인장을 맡았다. 무뇨스 사장의 마케팅 능력을 알아본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 최초로 외국인인 그를 사장급으로 영입했다.
무뇨스 사장이 합류한 뒤 현대차그룹 북미법인 실적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가솔린 세단 중심이던 주력 판매 차종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전기차, 하이브리드카로 전환하는 동시에 브랜드 파워를 키운 덕분이다. 시장 흐름을 꿰뚫는 무뇨스 사장의 판단력에 힘입어 2018년 68만 대이던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은 지난해 87만 대로 뛰었다. 특히 가솔린 세단보다 값이 비싸고 수익성도 좋은 SUV와 하이브리드카, 전기차에 힘을 준 덕분에 현대차 미국법인의 매출(15조2928억원→40조8238억원)과 순이익(3301억원 순손실→2조7782억원 순이익)은 더 큰 폭으로 개선됐다.
업계 관계자는 “검증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정 회장의 인사 철학에 따라 북미법인을 통해 실력을 입증한 무뇨스 사장이 현대차 경영 전반을 맡기로 한 것”이라며 “미국 시장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트럼프 2.0’ 시대가 열린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를 글로벌 톱3로 끌어올린 주역인 장재훈 사장은 다른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무뇨스 사장이 CEO로 취임하면 북미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 판매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친환경차 판매 확대를 1순위에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직전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차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무뇨스 사장은 최근 미국 현지에서 기자와 만나 “뛰어난 디자인, 기술, 품질, 안전을 두루 갖춘 친환경차 라인업을 완성한 만큼 전동화 전략을 지속해서 실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 유치 확대할 것”
현대차그룹은 지역별 판매 대수와 생산 거점 등으로 볼 때 이미 글로벌 기업이다. 미국 중국 인도 유럽 등 10개국에 생산시설을 갖춘 데다 판매 네트워크와 연구소를 세계 64개 도시(현대차 기준)에 두고 있어서다. 현대차그룹 연구개발(R&D) 거점인 남양연구소에는 세계 곳곳에서 발굴한 인재들이 한국 연구원들과 섞여 일하고 있다. 이 중에는 루크 동커볼케 사장, 마틴 자일링어 부사장, 만프레드 하러 부사장, 마크 프레이뷸러 전무, 사이먼 로스비 전무 등 임원급 연구원과 디자이너들도 포함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과거에 비해 해외 인재 영입이 한결 수월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기차, 수소차,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도심항공교통(UAM), 로봇 등 미래 사업을 중심으로 현대차그룹의 해외 인재 영입 작업은 갈수록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시작한 외국인 CEO 발탁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 주요 기업의 해외 생산·판매 비중이 국내 비중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전 세계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검증된 외국인 CEO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